[연중기획 - 지구의 미래] 버릴 게 없는 폐자동차…

 재활용률 90% 고개서 ‘헉헉’


수년째 88%대 정체… 폐차 재활용체계 문제 뭐길래?

                   
입력 : 2017-08-09 19:33:15      수정 : 2017-08-09 20:44:01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자동차는 죽어서 자원을 남긴다.’ 수명을 다한 차의 이론상 최대 재활용률은 97.7%다. 자동차 중량이 100㎏이라면 이 중 97.7㎏은 자원으로 회수해 재활용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차의 골격을 이루는 철, 타이어, 전선, 범퍼 등 부품 하나하나가 재사용되거나 녹아서 다른 제품의 원료가 된다. 핀란드의 자동차 재활용률은 97.3%로 ‘궁극의 목표치’에 도달했고 오스트리아(96.1%), 네덜란드(96.0%)도 근접한 상태다. 우리나라는 2008년 ‘전기·전자제품 및 자동차의 자원순환에 관한 법률’(전자제품 등 자원순환법)에서 2015년 재활용률 달성목표를 95%로 정했다. 하지만 현실은 88%대에 머물러 있다. 무엇이 발목을 잡고 있는 걸까.
클릭하면 큰 그림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가전제품에는 있고 자동차에는 없는 ‘생산자 재활용의무’ 

지난달 19일 경기도의 한 폐차장. 한때는 주인의 ‘애마’로 도로를 누볐을 승용차들이 샌드위치처럼 포개져 대형트럭에 실려 있었다.  

흔히 폐차장이라고 하면 이처럼 차를 납작하게 누르는 압축처리가 떠오르지만 사실 이는 폐차장 업무 가운데 가장 마지막 단계에 해당한다. 가정집에서 분리수거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동차가 자원으로 재탄생하기 위해서는 부품·원료물질별로 일일이 해체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이날 방문한 폐차장 안쪽의 넓은 작업장에서도 시트, 범퍼, 엔진, 전선, 라디에이터 등을 분리해내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운전자 입장에서 폐차장은 자동차가 생애를 마감하는 종착지이지만 재활용 측면에선 폐차장은 차를 자원으로 만드는 출발지이다.  

폐차장에서 폐냉매와 차 안에 들어 있는 각종 물질을 제거하고 마지막 남은 차껍데기(차피)를 압축하면 폐냉매는 폐가스처리업자, 차피는 파쇄 재활용업자로 넘겨진다. 

파쇄 재활용업자는 차피를 ‘슈레더’라고 하는 파쇄 기계에 넣어 지름 25㎝ 이하로 작게 쪼갠다. 이런 파쇄물은 성분에 따라 철이면 제강업자, 비철금속은 제련업자에게 각각 가서 원료물질로 환원된다. 철도 비철금속도 아닌 나머지 잔재물은 파쇄잔재물 재활용업자로 넘겨져 소각로에서 열에너지로 재탄생한다. 

이처럼 단계별로 재활용체계가 다 마련돼 있는데도 재활용률이 몇년 째 88%대를 맴도는 까닭은 재활용 업계에도 경제논리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철금속(차량 무게의 약 60%)처럼 양이 많거나 전선에 들어 있는 각종 비철금속처럼 값비싼 물질은 시장에서 알아서 거래가 된다. 승용차 한 대당 평균 3만∼4만원의 순익이 남는다. 

문제는 ‘돈이 안 되는’ 비유가(非有價)성 물질. 플라스틱 같은 합성수지, 유리, 고무, 시트폼이 대표적이다. 폐차장 관계자는 “비유가성 물질을 사람 손으로 분리하려면 시간과 인건비가 많이 드는데, 값이 얼마 안 돼 팔아봐야 마이너스”라며 “특히 요즘처럼 고철 시세가 낮을 때는 골칫거리”라고 했다. 
비유가성 물질인 유리.

같은 시트라 할지라도 자리마다 ‘몸값’이 달라 앞좌석은 서로 가져가려 하지만 뒷좌석은 애물단지다. 앞좌석에는 위치조정용 레일과 열선(철·구리)이 있지만 뒷좌석은 돈이 될 만한 재료가 거의 없어서다.

폐차 무게에서 이런 ‘애물단지’ 비유가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15% 정도다. 현재 자동차 재활용률에서 모자란 12%(100%-88%)와 거의 비슷한 수치다. 결국 자동차 재활용률을 높이려면 누군가 비유가성 물질의 처리비용을 지원하는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생산자책임재활용(EPR)제도는 제조·수입업자가 재활용 목표치를 의무적으로 달성하게 해서 목표 미달 시 재활용분담금을 내도록 하는 정책이다. 물건을 만든 사람이 처리까지 책임지도록 한 것이다. 유리병, 종이팩 같은 포장재와 텔레비전,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은 모두 이런 EPR 대상 품목이다.

독일과 핀란드, 스웨덴, 네덜란드 등 유럽국과 일본은 자동차 분야에도 제조·수입업자나 재활용업자를 목표달성 책임 주체로 지정했지만, 우리나라는 ‘95% 달성’이라는 목표만 있을 뿐 누가 목표를 이행하고 불이행 시 어떤 벌칙을 받는지 불분명하다.  

환경부 관계자는 “2011년부터 자동차를 EPR 대상에 넣으려고 꾸준히 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자동차 제조사와 폐차 재활용업계 등의 입장이 서로 달라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비유가성 물질이 재활용 시장에서 제대로 소화될 경우 합성수지 1만1620t, 유리 1만9665t, 고무 3575t, 시트폼 9832t이 한해 추가로 재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파쇄잔재물


◆전기차 재활용 방법은 아직 못 찾아 

폐차 재활용 EPR 도입이 진작 끝냈어야 할 숙제라면 전기차 재활용은 서둘러 시작해야 할 과제다. 전기차 재활용에서 가장 큰 관건은 배터리 처리다. 무게가 200㎏에 이르는 배터리는 차에서 분리해내는 것부터가 시계 배터리를 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김효성 공주대 교수(전기전자제어공학)는 “전기차 배터리는 단순히 볼트로 조인 게 아니라 중력가속도의 9배를 견디도록 강력하게 용접됐다”며 “분리하는 데만도 노동력과 비용이 많이 들어 경제성이 확보돼야 제대로 재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감전이나 폭발 위험도 있다. 이화조 영남대 교수(기계공학)는 “전기차 배터리는 완전히 방전되면 재충전이 안 되기 때문에 교체시기가 돼도 60∼80%의 수명은 남도록 설계돼 있다”며 운반이나 보관 시 위험이 따른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아직 전기차 폐배터리를 어떻게 처리해야 한다는 규정은 사실상 공백인 상태다. 지난해 폐차시장에 나온 전기차는 3대로 알려졌는데, 마땅한 처리방법을 찾지 못해 일반 폐차장에서 보관 중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앞으로 전기차배터리 재활용센터를 만들어 회수시스템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아직 전기차 폐차 물량이 많지 않아 경제성이 확보될 때까지는 정부가 나서서 하고 나중에 민간으로 넘기는 방식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전기차는 보급사업이 시작된 2011년 이후 지난 3월 기준으로 1만3500대가 넘어섰다. 최근 2∼3년새 급격히 늘었다. 김 교수는 “전기차는 배터리를 가혹하게 쓰기 때문에 3년 정도면 교체해야 한다”며 “앞으로 폐배터리 물량이 크게 늘 텐데 에너지저장장치(ESS)로 다시 쓰는 등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폐차는 백금의 '노다지' 

폐자동차에서 나오는 수많은 물질 가운데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은 폐촉매다. 우리나라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대기 정화를 위해 1987년부터 휘발유 차량의 배기가스 정화용 촉매 장착을 의무화했는데, 여기에는 다량의 백금족 금속이 들어 있다.  
폐촉매.
폐촉매에 들어 있는 백금족 금속의 평균 농도는 백금은 750ppm, 팔라듐 1000ppm, 로듐 250ppm이다. 권영식 수원과학대 교수(환경산업)는 “백금 광산의 백금 농도가 몇십 ppm 정도인 점에 비춰 보면 폐촉매의 백금 양은 어마어마한 수준”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백금의 3분의 1 정도는 재활용 과정에서 회수한 것”이라고 전했다. 

‘자동차 리싸이클링 산업의 발전’(2015년)이라는 책에 따르면 1년간 폐촉매에서 회수되는 백금족의 양은 백금 500㎏, 팔라듐 700㎏, 로듐 200㎏ 정도다. 이들의 경제적 가치는 530억∼550억원에 이른다.

백금족 회수량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인데, 특히 2000년대 중반부터 LPG 경유 등 모든 차량에 대해 배기가스 저감촉매 장착이 의무화되면서 앞으로도 높은 증가율을 보일 전망이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출처: 세계일보 홈페이지